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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역사1_싱가포르의 탄생

 

싱가포르의 역사 chapter1 _ 싱가포르의 탄생

 

 

 


 

 

우선 싱가포르의 역사를 설명하기 전에, 우리는 흔히 싱가포르에 대해서  막연한 지식을 갖고 있다. 나도 싱가포르를에 대해 잘 알기 전에는 

아시아의 금융, IT 무역의 도시라는 것과 깨끗한도시 라는 점 말고는 잘 알지 못했다. 아시아에서 싱가포르 나라는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어떻게 아시아의 금융과 무역의 중심부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 대한 간략한 지식도 전혀 없었다.

 

 

 

지금 싱가포르의 인구는  561만명 정도의 인구로 우리나라의 약 1/10 정도 차지하고 있다. 그의 면적은 692km 서울보다 아주 조금 클 뿐이 나라다. 그럼 이 싱가포르라는 나라는 어떻게 생겨 났을까.?

 

Republic of Singapore

 

위치 : 말레이반도  동남아의 섬나라로, 말레시아와 아주 가까운 위치

독립 : 1965년 8월에 분리 독립.

시간 : 한국보다 1시간 느림

날씨 : 보통 한국의 7-8월 날시 최저 23도~ 30도

인구 : 567만

수도 : 싱가포르

종교 : 불교 , 이슬람교, 기독교, 힌두교

정치 : 공화제, 의원내각제.단원제

 

 

 

 

 

출처:unsplash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시아로부터 독립한 나라이다. 다리하나 강하나 건너면 바로 말레시아로 갈수 있다. 싱가포르는 말레시아로 부터 독립하고 40년 만에 아시아의 중심부가 되었다. 싱가포르는 영국 동인도회사로 발견된 나라이다. 이 회사는 식민지를 찾는 회사이다. 1819년 동인도회사 레플스 경은 싱가포르를 발견하고 새로운 항구지로 선택한다. 이때부터  영국은 식민지로 만든 후 무역항으로 발전시키고 그 이후로 인구가 급증하게 된다. 이전에는 1000명 정도밖에 없던 인구가 80,000명 이상이 되었다. 무려 40년 만에. 그래서 지금까지 국부나 시조로 생각한다.

 

최초의 싱가포르의 토착 사람들은 말레시아 사람으로 주로 이루고 소수의 중국인들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이후 지금까지 중국인 비중이 대부분이다. 화교들이 대거 몰려온 까닥에 지금까지 중국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의 영국 해군기지로 1971년까지 존재했다. 아시아 정복하고 관리하는데 아주 좋은 위치였다. 단지 그 이상 이하로 사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싱가포르는 자치국가로 인정되며 서서히 경제성장을 이루어진다. 2차 대전 때 일본이 영국을 이기고 일본은 1942년에 싱가포르를  점령한다. 하지만 3년 간이 통치 후에 일본은 패망하고 영국으로 다시 귀속된다. 이때 싱가포르 사람들은 영국 사람들이 우리를 계속 지켜주기도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에 독립을 하기 원한다. 이때 마침에 싱가포르 국부 리관유는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1954년 인민행동당을 창단한다. 지금까지 싱가포르를 집권하는 정당이다. 공산 정당의 좌익계열이다.

 

리관유_싱가포르 초대 총리/인민행동당 총재로 재직/  출처:google image

 

1959년 집권여당이 되고 그 이후에는 군사및 외교를 제외하고 자치국가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1961년 말라여 연방은 싱가포르에게 연방을 제안합니다. 리콴유 총리는 공산당의 분열을 피하고 영국의 식민지통치를 끝내고 싶어한다. 말라야 연방과 통합한다. 말라야 연방, 싱가포르,사바, 사라왁 간의 연방을 통해 말라야가 말레시아로 재탄생 한다. 하지만 그이후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말레시아는 싱가포르의 화교 세력에 대한 위험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리콴유 총리는 말레이계 사람을 우선시하는 정치 정책에 반기를 든다. 1964년 인종 차별의 분쟁이 더욱 심해지고 이것은 중국인과 말레인 간의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결국 말레시아는 1965년 싱가포르를 분리 강제 독립을 시킨다. 싱가포르의 70% 되는 중국인들이 상권까지 장악했고 리콴유 총리 인민행동당이 정치도 너무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리콴유 총리가 말레시아의 총선을 출마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제 독립을 시킨 것이다.

 

리콴유 총리는 매우 힘들어했다. 그 이유는 생활이 말레시아의 의존도도 높았고, 식수부터 자원까지 다 공급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리관유는 아무 자원도 없기 때문에 이 국가를 어떻게 이끌어갈까 생각하다가 영국이 지배할 당시 단 하나 자원은 항구였다. 하지만 말레시아 반도의  페낭과 말라카의 항구가 있었기 때문에 영향력은 많지 않았다. 처음에는 싱가포르는 항구의 페선을 해체해서 거기서 나온 철을 이용해서 국가에 경제를 유지한다. 1930년 이후에 석유 기반으로 하는 디젤엔진 시대가 도입되고 50년에는 디젤엔진선이 본격적으로 바다를 항해한다. 하지만 그 많은 디젤엔진선에 불구하고 중간 선착지가 없었다. 즉 휴게소가 없었던 것이다.  싱가포르를 경유한 선은 석유였다. 석유를 들어와 저장하고 선박에  주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제일 빠르게 선점해 나갔다.  석유시장이 싱가포르에 정착되고 그곳을 무조건 거쳐 가게 되었다. 지리적인 이점으로 싱가포르의 룽주항은 세계 1항으로 자리 잡는다. 싱가포르의 자본의 근본은 텍스/ 세금이다. 세금 감면을 정책을 통해  외국규제를 풀어 외국자본을 감면을 혜택을 준다. 중국기업들이 아무런 제약없이 지켜줄수 있는곳 , 검은돈을 중심으로 투자 유치를 하게 된다. 지금까지 많은 외국기업들이 세금감면을 위해 이곳의 영주권을 따기도 한다. 외환거래에 있어서도 제약을 두지 않아 금융업의 시너지를 일으킨다. 그래서 아시아의 무역 도시로 부상할 수 있었다.

 

 

출처:unsplash

50년이 지난 후 말레시아와 싱가포르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사이에서. 종종 뉴스에서 싱가포르와 말레시아의 영유권 갈등은 여러 갈등의 접전을 볼 수 있다. 말레시아인과 중국 화교 간의 긴 오랜 분쟁과 분열 앙금으로 아직도 그들 사이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