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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역사

태국의 역사


출처pixabay

태국의 민족 타이족

지금 태국은 타이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처음부터 태국에 정착하지 않았다. 그들이 정착하게 된 것은 12세기 정도인데 캄보이아 역사를 보면 알듯이 태국은 캄보디아와 가장 밀접해 있는 나라이다. 예전에는 말레이반도, 크메르족으로 미얀마족으로 섞여 있는 나라였다. 9세기경에는 지금의 캄보디아 민족인 크메르족이 차지했으며 그 영토를 다스리고 있었다. 하지만 크메르족과 몽고 등의 여러 나라의 공격에 점점 쇠약해지고 그 틈을 탄 타이족을 크메르족에 반기를 들며 영토를 유입하는 가운데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수코타이이다. 12세기였으며 태국이 최초의 나라인 것이다. 이후 수코타이는 크메르를 공격해 지금의 캄보디아 영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때 왕은 람캉행 대왕이다. 말레이반도, 캄보디아, 라오스 등을 점령했으며 이때 불교문화를 유입하고 태국 글자를 만들었다. 하지만 전성기를 지나고 아유타야라는 왕국의 등장으로 13세에 수코타이를 속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같 타이 종족이었다. 이후 아유타야의 전성기가 오고 크메르 제국을 침략하여 영토까지 확장해 나갔다. 하지만 근방에 있던 땅웅우 왕조에 의해 아유타야 수도는 16세기에 점령된다. 이때 아유타야 왕 나레수안은 어린 시절 땅웅우 국가에 인질로 잡혀있었는데 본국으로 복귀하자마자 그는 아유타야를 지키기 위해 싸웠고 이후 땅웅우과 크메르족으로부터 나라를 지켰다. 아유타야 나레수안은 나라를 지키며, 문호 개방을 활성화시켰고 특히 프랑스랑 수교를 하는 등  서양과 무역이 활성화되었다. 하지만 양쪽 크메르족과 미얀마의 끊임없는 전쟁에 지치는 가운데, 꼰방웅 왕조 17세기 위해 또 한 번 위기를 겪게 된다. 하지만 아유타야는 탁신 대왕에 의해 나라를 다시 지킬 수 있게 되고 이후 톤부리 왕조를 세우고 그의 수도를 톤부리라고 불리게 한다. 다른 타이족의 나라 란나왕국와 통일을 이루고 라오스 캄보디아까지 점령하게 되는데, 탁신 대왕의 죽음으로 다른 왕조가 다시 나타나게 되고 이때 차크리 왕조가 세워지고 프라야 차크리라는 왕이 세워진다.

태국의 탄생

프라야 차크리는 라마1세이며 그때 수도를 방콕으로 지었다, 지금 태국의 수도인 그 방콕이다. 라마 왕조가 지어지고 르라야 차크라는 크게 성장하며 동남아를 하나로 이루기까지 한다. 라마 5세 때는 빠른 서구화로 다른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태국도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프랑스의 영국에게 땅을 떼어줬어야 한다. 캄보디아, 라오스는 프랑스에게  말레이반도 영국에게 영토를 주게 되었다. 

태국의 19번의 구데타 정권교체

라마 7세기에 무혈 쿠데타가 시작되는데 이후에는 입헌군주제와 민주주의가 실행되었다. 하지만 송크람이 대령이 쿠데타로 라마 7세를 영국으로 추방하고 60년간 독재 정권을 했다. 이때부터 19번에 쿠데타 이루어지는데 이는 계속 집권이 바뀌게 되었다. 최근에 일어났던 정권 교체 구테다 탁친나왓 총리부터 시작된다. 탁친나왓이 2001년 총리가 된다. 그는 금수저 배경을 띤다. 사업의 성공으로 정치인과 교류가 되며 1998년에는 타이락 타이당을 창당하며 2001년 총리까지 이르게 된다. 이때 태국은 경제성장을 이루는데 빈민층 공략으로 크게 지지를 받는다. 하지만 2004년 자신과 가까운 재벌 정치인과 멀어진다. 비리와 언론장악 등으로 문제가 많았지만 2005년 재선에 농어촌 공략으로 재집권을 하게 된다. 여전히 존재하는 뇌물 혐의, 비리, 가족 비리 등으로 2006년의 태국의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는데 이것을 일으키는 시민들을 옐로셔츠라고 칭했다. 탁신 집권을 지지하는 레드셔츠도 등장한다. 탁친나왓이 유엔으로 인해 미국을 방문할 때 태국에는 쿠데타 일어난다. 쿠데타를 승인한 것은 라마 9세였고, 인명피해가 일어나지 않는 무혈 쿠데타가 이루어지는데 이를 주도한 사람은 수라윳 출라논 태국 육군 참모이다. 이때 일어난 쿠데타는 18번째 쿠데타였다. 이후 그는 망명된다. 2007년 친탁신계가 정당의 승리를 이끌지만 법원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고 일부 친탁신계는 민주당으로 유입하는데  2011년 탁신의 여동생 잉락 치나왓이 정권에 승리하면서 다시 이끌게 되는데 그의 정권은 포퓰리즘을 압세워 2년간은 잘 통치해 왔다. 쌀의 가격을 50%를 높이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그 정책 가운데 많이 비리가 발생하고 이에 궉력남용으로 판단한 옐로셔츠가 또 시위가 일어나며 2014년에는 잉락은 총리직에 물러나게 되고 이후에 잠시 태국은 다스리는 정권이 아무도 없게 되었다. 이후 정부는 5월 20일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틀 뒤에 태국 구 테다가 또 일어나는데 이를 이끈 사람은 쁘라윳 찬오차 이다. 라마 9세의 승리로 쿠데타가 승인되고 이후 국가입법회의에서 과도총리에 되면 그가 지금 2019년까지 이끌고 있다. 시민의 선거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쿠데타로 총리가 바뀌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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