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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역사

캄보디아 역사


 

캄보디아 초기 역사_크메르족

캄보디아는 크메르족의 나라이다. 인도차이나와 티베르에서 유입됐다. 크메르족의 역사를 매우 깊다. 과거에는 인도차이나 찬란한 문영을 떨칠 정도로 대부분을 차지했었다. 하지만 외세의 침입으로 중세와 근대의 역사를 보면 비참하게 그지없다. 캄보디아의 근원 최초의 나라는 푸난이다. 지금의 베트남 호찌민의 있는 메콩강 하루였는데 이곳은 무역의 중심이면서 해상교역에 강세를 보였다. 푸난은 인도의 문화 힌두교와 말레이족의 문화를 동시에 영향을 받은 나라이면서 힌두교를 믿었던 나라이다. 푸난은 3세기 지금의 캄보디아, 말레이반도, 태국까지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7세기부터 푸난의 역사를 사그라지는데 첸라라는 지역과 동쪽에 위치한 참파한테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첸라의 역공의 첸라는 붂조인 짜오프라야강과 메콩강에 정착을 했다.

첸라는 주로 크메르인이었으며 캄보디아의 본격적인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지금의 씨엠립으로 이동하여 지금의 중심지처럼 자립을 잡았다. 그리고 첸라는 푸난을 멸망시키고 자신의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하는데 이때가 639년 자야바르만1세기 였다. 하지만 자야바르만의 죽음에 첸라는 분열을 겪고 사일렌드라왕국에 위해 지배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후에 2세가 자야바르만이 독립해 첸라를 통합시키고 크메르 제국은 세운다. 그때 당시 앙코르의 중심지로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으며 강대국으로 발전해 나갔다. 이 활성화된 시기에 앙코르 와트가 사원이다(12세기). 이는 힌두교의 종교와 크메르 왕의 권력을 더욱 곤곤히 다졌으며, 이것은 지은이는 수리야바르만 2세이다. 이때 또한 크메르족의 영역이 확장되는 시기였다. 하지만 전성기에 후에 14세기 몽고의 침입으로 점점 쇠약해지는데 이 시기에 태국이 독립하며 크메르를 압박한다. 이후 또 란창이라는 왕국은 독립을 했고 이후에 태국 안에 생겨난 아유타야 왕국은 크메르 압박하고 더 극심히 싸우게 되는데 양쪽에서 크메르족들은 공격을 받았다. 강국이 된 아유타야에 공격을 받고 1431년 씨엠립까지 점령하기는 크메르는 이때 수도로 정했던  씨엠립을 잠시 떠나고 프놈펜으로 옮기는데 오늘날의 캄보디아 수도인 프놈펜이다. 

캄보디아 역사 시작_프랑스 식민지

아유타야로 물러나 크메르족 이후에 캄보디아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6세기 외세의 간섭으로 캄보디아 몰락한다. 이렇게 짧게 역사가 끝나게 될 뻔한 캄보디아는 태국과 베트남 속국을 돌아가면서 나라를 유지해 간다. 양쪽 사이에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베트남과 태국은 서로가 캄보디아 자취권을 행사하기 위해 싸우는데 이후 이들은 18세기에 메콩강 사이공 지역은 베트남 지역이 점령하고  태국은 씨엠립 지역을 차지한다. 이후에 이들은 캄보디아까지 점령한다. 이때 태국의 왕인 짠완은 아예 캄보디아를 자기의 것을 만들기 위해서 베트남과 손을 잡는데 베트남은 수교하는척하고 뒤에서 캄보디아 남부를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18세기에 캄보디아는 태국과 베트남에게 점령을 당해 사라질 시기가 되었다. 이렇게 속국인 된 캄보디아는 이때 메이 여왕이 즉위하는데 이 사람은 베트남의 허수아비였다. 하지만 크메르인족은 베트남을 저지했고 이때 캄보디아의 왕자인 두옹왕자가 태국에게 도움을 구하고 반란을 일으키는데 이때 투쟁에 승리해서 1848년에 베트남이 먹었던 남부 땅을 되찾고 왕위에 오른다. 하지만 계속되는 갈등에 불안한 캄보디아는 이때 프랑스를 만나는데 1863년 노르놈은 도와줄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프랑스는 이 당시 베트남 식민지를 건설하고 있었고 이후에는 캄보디아는 프랑스령 식민지가 자연스럽게 되는데 태국에 뺏겼던 씨엠립 지역도 되찾으며 땅도 되돌려 받게 된다.

캄보디아 독립

2차 세계 대전 이후 캄보디아는 많은 역사적 흐름이 바뀌는데 여는 식민지와 다르게 프랑스 식민지일 때는 꽤 평온했던 캄보디아였다. 전쟁 이후 시아누크왕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했다. 하지만 그는 무능과 독재정치로 인해 경제적 사정은 매우 어려웠다. 이때 론놀 장군은 1970년 시아누쿠왕을 몰아내고 캄보디아 공화국을 세운다. 이때 캄보디아의 비극이 시작되는데 론놀 정부는 미국에 지원을 받았으며, 북베트남 지원을 받는 크메르 루주 공산세력관 갈등을 겪었다. 이후 캄보디아 내전이 시작되고 이것은 베트남전까지 이끌고 만다. 하지만 론놀 정부 패배를 하게 되는데 4년 만에 크메르루즈가 캄보디아 장악을 한다. 이후 더 비극으로 치돋는데 그 유명한 킬링필드가 이때 일어난다. 당시 지도자는 폴 포트이며 극 공산주의에 자본주의 경제를 금지하며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학살해왔다. 지식인 부유층 대학살에 이때 이루어진다. 지식인층은 자기 의견에 반기를 듣다는 이유로 죽이면 영유아 가리지 않고 대학살이 이루어지는데 지금 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셔 약 200만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아직도 씨엠립 앙코르 사원에 가면 학살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이후 1979년 베트남군의 게릴라전으로 폴 포트 정권 크메르루주는 몰락하고 캄보디아에 괴뢰정권인 캄푸치아 이민 공화국을 만들어진다. 하지만 1980년에는 소련 공상권에 군을 철수하게 되고 괴리 정권도 무너진다. 지금까지 많은 전쟁 속에 살아남은 캄보디아지만 가장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때는 바로 1975년에 일어난 킬링필드 사건이다.

시아누크 민족전선 크메르루주 손산 크메르 해방 전선 이 새롭게 나누어지고 1993년 선거를 했으며 처음 의회가 만들어졌다. 이때 시아누크를 왕으로 인정하고 왕국을 승인하며 캄보디아의 입헌군주국을 선언했다.